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민혁명당 사건 (문단 편집) === 사법살인 === || [[파일:2차 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들.jpg|width=100%]] || ||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한 8명의 희생자들 || [[1975년]] [[4월 8일]] 오전 10시에 [[대법원]]에서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관련 피고인 36명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원심대로 형이 확정됐다.[* 이 당시 대법관들이 판결 내리기를 거부하자 해임과 선임을 반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선고 바로 다음날인 4월 9일 새벽 4시 30분부터 아침 8시까지 서울구치소에서 이들 8명에 대한 형이 집행되었다. 사형 집행이 시작된 것은 형량이 확정된 지 겨우 정확히 18시간 30분 만이었다.'''[* 참고로 형이 집행된 것은 대법원의 선고통지서가 서울구치소에 도착하기도 전이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인혁당 사건의 현장 지휘자였던 [[이용택(1930)|이용택]] 중앙정보부 6국장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 집행 명령을 내려라'''"는 '''박정희의 지시'''가 국방부에 이미 전달돼 있었을 것이라고 하며 덤으로 박정희는 1975년 2월 21일에 있던 문공부 순시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합법 정부를 뒤집어엎으려 한 자들은 어느 나라 법에서든지 극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고 말한 바가 있다고 하고[[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4865|#]] 이용택으로부터 인혁당 사건에 대한 수사에 대해 일주일에 두 번 꼴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4276|#]] 그리고 [[2005년]]에 공개된 인민혁명당 사건 희생자의 사형 집행 관련 문서에 따르면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장과 서울구치소로 발송된 형선고통지서는 1975년 4월 8일 오전 10시에 있었던 대법원 선고보다 '''7시간 앞선''' 이날 오전 3시에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에 접수됐다는 소인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9359&SRS_CD=0000014672|#]] 참고로 인혁당 사건 사형 집행 명령서에 최종 결재를 한 사람은 [[황산덕]] 법무부장관이 아니라 [[서종철]] 국방부장관이었다.] 이날 구속 이래 1년 가까이 피해자들을 보지 못했던 가족들은 '형이 확정되었으니 [[면회]]가 가능하겠지'라고 위로차 아침 일찍 피해자들이 수감되었던 서울구치소에 면회하러 왔던 유족들은 이미 형이 [[집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졸도]]했다고 한다. [[파일:1523207715_c4_2.jpg]] 당시 희생당한 사형수 8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프로필의 직업은 체포 당시 기준이며 시신은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현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 서도원(徐道源, [[1923년]] 3월 28일 [[경상남도]] [[창녕군]] 출생, 당시 나이 52세, [[매일신문|대구매일신문]] 기자) * 도예종(都禮鍾, [[1924년]] 12월 25일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 출생, 당시 나이 50세, 삼화토건 회장) * 송상진(宋相振, [[1928년]] 10월 30일 [[경상북도]]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동구(대구광역시)|동구]]) 출생, 당시 나이 46세, [[양봉|양봉업]]) * 우홍선(禹洪善, [[1930년]] 3월 6일 [[경상남도]]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출생, 당시 나이 45세,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 하재완(河在完, [[1932년]] 1월 10일 [[경상남도]] [[창녕군]] 출생, 당시 나이 43세, 건축업) * 김용원(金鏞元, [[1935년]] 11월 10일 [[경상남도]] [[함안군]] 출생, 당시 나이 39세,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 * 이수병(李銖秉, [[1937년]] 1월 15일 [[경상남도]] [[의령군]] 출생, 당시 나이 38세, 삼락일어학원 강사) * 여정남(呂正男, [[1944년]] 5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 출생, 당시 나이 30세,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 참고로 이들 중 하재완과 우홍선은 '''[[6.25 전쟁]] 참전용사였다.'''[* 이와 비슷하게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권의 사법살인 사건인 [[슬란스키 재판]]에서는 한 술 더 떠 '''[[NKVD]] 스파이로 일했던 사람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몰아 죽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